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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그네스
mannerist
2008. 12. 19. 00:48
하나.
땡길 때 지르는 거다. 이런 건. 여섯시 칠 분에 컴퓨터 끄고 나와 혜화동 정미소에 갔다. 이십 분을 기다려 삼만원짜리 표를 끊었다. 이층 맨 앞줄, 자리는 불편했다. 그리고 가로막힌 유리벽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연극이 시작된 후, 답답함을 느낄 순간조차 없었다.
둘.
매너놈이 바라는 이상적 인간이 바로 닥터 리빙스턴이다. (마지막 남은 한 조각 자존심 때문에 과거형으로 쓰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의지대로 '진실'을 밝혀냈다. 그런데 대체 그래서 그녀에게 무엇이 남았나. 결국 참혹한 진실 앞에, 기적을 바라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고백한다. 그래서 내게 묻는다. 매너놈이 리빙스턴보다 강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적 이성 타령을 하느냐.
셋.
삼십 년 쯤 시간이 흐른 뒤, 조카뻘 되는 사람들에게 빙긋 웃으며 자랑할 일이 생겼다. 윤석화가 연기하는 리빙스턴을 보았노라고. 그리고 정말 다행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애인님을 놔두고 혼자 슥-가서 보고 와서. 같이 갔더라면 지금과 같은 먹먹함을 느낄 수 없었겠지. 서늘한 바람 이는 동대문길을 걸어 집구석 돌아오며, 자칭 '조금(이는당사자 강조)'날라리 외부자 시선으로 보면 지독히 기독교스러운 P선배가 생각났다. 아마도 그녀가 보면 매너놈과 전혀 다른 의미에서 지독한 공감이 이끌려 나오겠다 싶더라. 크리스마스 카드를 쓴다면, 추신. 쪽에 몇 자 붙여야겠다.
넷.
죽음과 소녀. 를 들으며 집에 와서 혼자 술을 마셨다. 한 번 더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