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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09 건반이 손에 붙던 날.
aspiring pianist2008. 9. 9. 08:40

시쳇말로 '그분'이 오셨나. 어쨌든 어제 저녁에 그랬다는 얘기다.

점심시간의 레슨. 일요일에 대강은 쳐 봤지만 여적 오른손 화음 스타카토 처리가 잘 안되는 1악장 중반부, 여기 부분연습만 100번 넘게 반복했지 싶다. 그쯤 되니 악보가 외워지고 손 위치가 대강 잡힌다. 그러고나서 레슨 시작할때 "연습 많이 하셨어요?"묻는 선생님의 웃음에 머리 북북 긁으며 이렇게 말한다. "난해하던데요. 거기" "어디요?" "여기 말이죠." "(엷은 웃음)하여간 애나 어른이나 어려워하는데는 다 똑같다니까요."

신기하게도. 여적 내가 듣기에도 모자란데도 선생님은 고개 끄덕이며 그냥 넘어가신다. 내가 놓친 # 하나를 지적해 주시는 거 말고는. 내가 지적받은곳은 되려 엉뚱하게도, 동일한 음을 손가락 바꿔서 치도록 지시된 부분. 몸은 독학 때의 악습으로 한손가락으로 계속 짚는 게 습관화되어있는데, 악보에 눈을 두게 되면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려고 하고, 그걸 또 습관은 막고, 그러다보니 이도저도 아닌 게 되어 손가락이 엉킨다. 이럴 땐 어떻게 하나? 답은 나와있다. 리흐테르의 말마따나 "악보대로"치면 되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K265의 1번 변주를 연습할 때다. 첫번째 도돌이표 끝나고 동일한 리듬을 한 음씩 내려가며 4번을 반복하게 되어있는 부분,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손가락 번호도 개무시하고 5번>>4번>>3번>>2번 순서대로 첫 음을 짚어나갔다. 근데 여기에 익숙해지니 아주 골아픈 사태가 발생했다. 다섯손가락에 들어가는 힘이 다 다르다 보니까 균일하게 짚어져야 할 연속음이 다 다른 강도와 소리가 나는 거다. 그때서야 악보를 다시 보니, 무조건 4번으로 첫 음을 짚어나가게 되 있더라. 아차. 싶었다. 짚기 편하다고 끝이 아니라 최대한 균일한 소리를 내게 하기 위한 배려였던거다. 그걸 바로잡고 습관 들이는 데 적잖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뭐가 되었든. 닥치고 악보 지시대로 짚어나가는게 가장 빠른 길이다.

그건 그렇고. 퇴근하고 다시 연습실에 틀어박혀 낮에 연습하던 녀석을 짚다가 지루해져 다시 모차르트의 K265를 짚기 시작하는데, 이게 아주 손가락아 쫙쫙 붙는다!! 제대로 필 받아 첫 변주부터 마지막 코다까지 열댓 번을 반복하다보니 금방 연습실 문 닫는 시간이 되길래, 저릿한 왼손 손목의 통증에 묘한 쾌감까지 느끼며 집에 돌아왔다.

동갑내기 아가씨의 부탁으로 들어가게 된 내일 공장 홈페이지 심사 자료를 두어 시간 디비다가 성질이 나서 잠깐 건반 앞에 앉아 볼륨 낮추고 짚어나가는데, '그분'이 아직 안 떠나셨나보다. 어떻게든 왼손이 한번씩 꼬이던 6번, 오른손이 한번쯤은 헤메던 7번에 건반이 쫙쫙 달라붙는다.

다시 돌아올 통증을 기다리며. 신경 끄고 건반 짚어나가야겠다. 이제 모차르트 K265도 거의 완성되었으니, 선생님과 진도 나가는 교재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즐겁다.



덧붙여_활달한, 다소 왈가닥스러운 다른 피아노선생님이 오늘 생뚱맞게 연습실 문 열더니 묻는다. "혹시 매너놈씨 교회 다니실 생각 있어요?" "아, 아뇨... 전혀." "다닐 생각도 없으세요?" "네." "음... 제 친구중에 y대 대학원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걔도 음악 진짜 좋아하거든요." 켁. 당췌 매너놈의 피아노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를 한건지. 분명히 지방 서식하는 애인사마 계신다고 이야기했는데. 하긴. 퇴근하고 별다른 일도 없이 무조건 연습실 죽치는게 이상하기도 하겠지.

그리고_꿈이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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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AHA U3. 야마하 업라이트 피아노의 최상위 모델.
뭐. 애인님댁 거실에 있는 그랜드피아노를 쓰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
Posted by manne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