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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6 3건의 결혼식
打字錄2008. 11. 16. 23:34
학부 동기 S와 P, 그리고 사무실 동료 A의 결혼식이 한 주에 다 몰려 있었다.

S의 결혼식은, 비가 흩뿌리는 날씨만큼이나 서늘했다. 처음엔 그랬다는 말이다. 30분 전쯤 도착한 결혼식장에는 잔치집다운 부산함이 없었다. 녀석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잠시 기다리니 학부 선배이자 공장 선배인 H가 온다. "아니 사람들이 왜이렇게 없데. 원래 이런 날엔 아버지 친구들이 자리 많이 잡는 법인데. 역시 좀 그렇네." 그제서야 매너놈은 서늘한 식장 분위기를 납득했다.

그런 판국에 학부 동기들, 선배들은 시간이 다 되어도 오질 않았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30분 전, 세 학번 위 윗 선배인 Y의 결혼식이 지근거리에 있기 때문이었을거다. 라고 H와 매너놈은 합리화했다. 그게 맞아떨어졌는지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겠다. 그 순간, 못본지 5년 된 O교수 등장. 오늘의 주례 선생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이런 젠장, '관례'대로 교수님을 수행해야 할 사람은, 기껏해야 H와 매너놈 뿐이었다. 결국 매너놈은 O를 모시고 주례가 받아야 할 서비스를 충실히 수행했다.

조금 썰렁했던거 말고는, 그래서 어여 밖에 있는 사람들 들어오라는 방송이 몇 통 울려퍼진것 말고는, 그저 그런 결혼식이었다. 그와중에 만난 반가운 이도 있었다. 애인님의 절친한 친구, 원주에서 서식하는 K선배가 유모차를 끌고 온 거다. 느즈막히 도착한 N선배 -지난주 매너놈이 축가 연주해준, 바로 그 결혼식의 신랑이다 - 가 눈치없이 묻고 따진다. "애가 5개월인데 결혼은 작년 11월... 그게..." 그순간 날아드는 K의 강펀치. "나 어디가서 물어보면 9월에 결혼했다고 하라니깐!!" 빙긋 웃으면서 매너놈이 덧붙인다. "그러지 말고, 가을에 결혼했다고 하시죠." "그래. 그거 좋다."

갈비탕이 나왔다. 간이 조금 심하게 들은 찬은, 그래도 먹을만했다. 밥이 늦게 나와 국을 절반쯤 비운 다음에야 흰 쌀밥을 국에 말았다.



공장 동료 A의 결혼식. 공장에서 나의 폭언과 망발을 가장 많이 받은 그녀다. 앞건물 K의 말을 빌리자면, 공단 최고의 미녀 A는 매너놈이 본 신부 중에서도 꽤나 아름다운 축에 속했다. 궁금한 건, 팔뚝살을 도대체 어떻게 감췄을까 정도? 그것 빼면 화장술의 발전에 경악할 정도로, A는 아름다운 신부였다. 그런 아리따운 A옆에 다가가 부주 삥땅을 어디다 쳐야 하느냐는 막장스런 질문을 하는 매너놈에게, A는 빙긋 웃으면서 동생을 가리켰다. 적당한 삥땅을 그녀에게 안겨줬다.

여적 삼십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핸드폰 문자를 확인해보니 앞방의 L과장님이다. 올라온다고 하시기에 기다리면서, 교회 들렸다 온다고 한 P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차 대고 있다는 그녀에게, L이 올라오고 있으니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P선배는 들어가서 뒷자리 잡아놓으라는 말을 붙였다.

칼질을 하느라 제대로 결혼식을 보진 못했다. 빔프로젝터로 뿌려지는 화면이 그리 선명하지 않은 탓이 크다. 신랑신부에게 치는 부분조명이 너무 센 나머지 하얀 드레스 입은 신부가 제대로 화면에 잡히지 않았다(그걸 가리켜 P는 "신부 어디갔죠?"라고 물었고, 매너놈은 고기를 씹으며 화면을 돌아보다 신랑 옆자리의 하얀 덩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신랑 옆에 하얀 거 아니에요?" "아 맞다. 저 하얀 거").



L의 차를 타고 이번주의 마지막 결혼식장으로 갔다. P의 결혼식이다. 칵테일 재료가 많이 나와있길래 즐겁게 이것저것 만들어 먹었다. 블랙 러시안을 만들기도 했고, 민트 엑기스를 토닉워터에 희석시키고 레몬을 얹어 즐기기도 했다. 아니나다를까. 꽤나 액티브한 선배 S의 갈굼을 받았다.

조금 어눌한 몸짓과 손짓을 보이는 P는, 귀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눈에 박히는 건. 신부의 눈물자욱이었다. 그때서야 떠올렸다. 어제와 오늘 본 세 명의 신부 모두, 밝은 표정이 아니었음을. 그 반대로, 신랑 셋은 모두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도록 웃고 있었음을. 그 극명한 대비를 떠올리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키지 않은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간던 목요일 밤, 애인이 전화로 물었다. 매너놈씨, 우리 결혼하면 집 어떻게 할 꺼야? 정신을 가다듬고 답했다. "전세 들어갈 집 구해봐야지. 모아둔 돈도..." 3초간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정적 때문에 술이 깬 건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정적에 대해, 믿을만한 여성동지 세 명에게 자문을 구했다. 세 명이 세 가지 이야기를 했다. 세 가지 모두 정답도, 오답도 아닐게다. 그 사이 어디엔가, 세 가지 이야기가 각기 흩어져 있을 거다. 그녀의 정적에 해답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안다. 내가 쓸 수 없는 답이라는 게 문제라서그렇지. 그녀의 정적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미소로 바꾸려면, 매너놈은 어떻게 해야 할까.
Posted by manne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