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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13 서른살의 몸살
打字錄2008. 12. 13. 18:20
목요일 점심 먹고 난 이후부터 몸이 이상했다. 오한이 슬슬 오는 것이 낌새가 안 좋아 평소에 입지도 않던 공장 작업복까지 껴입고 연신 따뜻한 물과 모과차를 들이킨것도 모자라 옆방에서 아스피린까지 빌려 먹었다. 그럼에도 몸의 떨림은 가시지 않았다.

몸 안좋다는 핑계를 대고 피아노 저녁연습을 가지 말까 생각도 해 봤지만 글자 그대로 핑계가 될 거 같았다. "30분만 다녀오겠습니다" 말하고 악보 들고 연습을 갔다. 정확히 시켜놓은 밥 돌아올 타이밍에 들어가 육개장을 떴다. 국물은 따뜻하고 매콤했지만, 몸의 떨림은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일곱시 반을 넘기니 오한이 도를 넘었다. 그판국에도 공장 작업반에는 아무도 퇴근할 생각을 안 한다. 매너놈에게 시급히 걸려 있던 일은 없었지만, "뭐 시킬 일 생길 지 모르니 대기하라"는 작업반장의 말에 몸 뜰 생각을 못했다. 이럴 바에 약기운이나 빌어보자 하고 새로 받은 사수에게 약국 다녀오겠습니다 말을 던지고 몸을 굴렸다. 생강쌍화탕 한 병과 몸살감기약 한번 먹을만큼을 받아들고 앞건물 방송국에 들려 매너놈과 비슷한 신세의 L에게 들려 농담따먹기를 빙자한 자학을 좀 하다 건너왔다. 그러고나니 매너놈 엄살이 좀 심했던가. 하느님이 보우하사 퇴거 명령이 떨어졌다. 일단은 지화자.

올 초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매너놈은 몸살이 나면 청각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차 한대 지나갈때마다 고막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간신히 mp3로 귀 틀어막고 걸음 하나씩 옮기는데 내 발자국 소리에 내 몸이 흔들거린다. 이런 젠장을 외치며 간신히 집에 왔다. 살갖에 닿는 면티부터 맨 위의 오리털 조끼까지 다섯 겹의 옷을 겹쳐 입고 세 겹의 이불을 덮어쓰고 전기장판 위에 드러누웠는데 빌어먹을, 땀은 커녕 온몸이 덜덜 떨린다. 손발이 얼음장같았다. 당췌 이게 현대물리학으로 설명가능한 현상인가 의심이 들었는데 뇌입원 지식인을 찾아볼 엄두는 내지 못했다. 몸살 기운이 가시기를 빌며, 간신히 눈을 붙였다.

다음날 아침. 눈 떠서 몸살기운이 대강 가셨나 싶었는데 왠걸,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몸마디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이런 개같은 경우가. 를 외치다 결국에는 공장에 전화를 걸었다. 연차 하루 써주세요.

이틀을 끙끙 앓다 마지막 남은 보너스로 깨질듯한 두통이 밀려왔다. 타이레놀 네 알과 지독한 커피 한 잔, 그리고 반신욕 한시간으로 간신히 잠재운 지 채 한시간이 지나지 않는다. 가끔 매너놈에게 놀리듯 던지는 P선배의 농담대로, 이년 더 살아보라는 말이 뼈마디에 아려왔다. 병원 한 번 간 일 없이 보낸 지난 영광의 10년, 20대는 이제 스러져버린것 같다. 아플 이유가 없는데 난데없이 닥친 몸살에 온전히 이틀 날려먹고, 타이레놀 절반만 쪼개 먹어도 두통과 담 쌓을 수 있던 시절은 지나버렸다. 예전같으면 치사량에 다름없을 타이레놀 네 알을 하루에 쏟아붓질 않나, 이틀동안 잠에 취해 서있을동안 허리가 부러질듯한 고통에 시달리질 않나. 건강체질이란 말이 왜 허무한지, 사전에서 왜 지워져야 하는지 실감나는 중이다.

어쨌든, 토요일 밤과 온전한 휴일 하루가 남아있다. 앞으로 어지간히 골아플 1년의 서두에 서 있을 내게, '판의 틀'을 짜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내 뜻과는 다르게 사수를 잃고 독고다이가 된 지금, 공장 전체의 성과관리 체계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언제나 매너놈에겐 그랬다. 이왕 망한거 완전히 망해보자. 라 결심할 때 되려 좋은 일이 터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일게다.
Posted by manne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