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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02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피아노 첫 부분. 3
aspiring pianist2008. 12. 2. 00:03
주말까지 공장 나갔다 집에 돌아오니 그닥 많은 시간이 남지 았았다. 억울해서 혼자 맥주 한 병을 비웠다. 적당히 알싸한 기분에 취해 방구석을 둘러보았다. 얼마 전부터 IMSLP에서 다운받아 틈틈히 찍어놓은 교향곡과 협주곡 총보 목록이 눈에 들어왔다. 거짓말 조금 보태 매너놈의 몸통만한 D링 바인더를 펼쳐 피아노 앞 보면대에 펼쳐놓았다. 새벽 한시가 허용하는 가장 높은 크기로 볼륨을 맞춰놓고, 피아노 파트를 오른손만 한 음 한 음 짚어보았다.


아주 천. 천. 히. 하나 하나 짚어보고 박자를 맞춰보니 얼추 익숙한 소리가 나온다. 그렇게 두 마디를 익혔다.

그러고나서 오늘 점심시간, 레슨을 받고 연습을 마친 후 남은 짜투리 시간 몇 분 동안, 주말 밤 디지털피아노 앞에서 짚어 본 이 멜로디를 업라이트 피아노 앞에서 짚어 보았다.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손에 힘을 빼고 긴장을 풀어 부드럽고 섬세하게 치려 해도 깡통으로 유리판 내리치는 소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묵직하면서도 따듯한 길렐스의 소리도, 소름끼치도록 깔끔하게 날이 선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소리도, 불타오르는 패기 어린 레온 플라이셔의 소리도 내기 힘들다. 여러 번을 반복하다보니 화음을 정확하게 두드리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족히 이삼십년은 묵었을듯한 연습실의 피아노 탓이라기보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터치의 수준이 그정도였기 때문일거다. 역시 아직 나는 멀었다.

여섯시, 저녁밥을 시켜놓고 다시 공장 밖을 나섰다. 악보를 들고 피아노 앞에 앉아 한시간을 더 치다 다시 공장으로 돌아왔다. 열 시 십오분까지 모의평가보고서 여섯 장을 쓰고, 앞건물 방송국과 센터에 건너가 지인들과 말을 섞다 나왔다. 열한시까지 , 아직 넉넉하게 남아있었다.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시덥잖은, 그러나 따스한 농담을 섞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화요일을 맞은 지금, 술이 고프다.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Posted by manne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