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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8 멜리니코프/비스펠베이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회 후기
aspiring pianist2008. 9. 28. 19:39
눈 좀 밝은 사람이라면 제목에서 뭔가 이상하다 고개를 갸우뚱할거다. 매너놈은 일부러 제목 그렇게 박았다. 분명히 제목은 베토벤 첼로 소나타 / 변주곡 전곡 연주회였다. 하지만 매너놈이 여기 가서 들은 건 첼로 반주를 동반한 다섯 곡의 피아노 소나타와 변주곡이더라. 그만큼 알렉산더 멜리니코프의 피아노가 압도적이었다.

작년인가 한국 왔을때 홍보 문구가 "리흐테르가 인정한 피아니스트"였다. 이세욱 선생이 옮김 "리흐테르 - 회고담과 음악수첩" 을 보면 얼마나 이 양반이 음악가에 대해 까다로운 사람인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만큼 믿음 가는게 절반, 거기에 한 번 정도 칭찬한 거 가지고 홍보사에서 뻥튀기 튀기는거 아닌가 하는 의심 절반을 품었던 게 그 찌라시를 보던 때 매너놈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일단 귀로 듣고 나니, 믿을 수밖에 없더라.

베토벤 첼로 소나타의 가장 압도적인 연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로스트로포비치와 리흐테르의 전곡 연주 음반이다. 두텁고 무겁지만 결코 둔중하지 않은, 날렵한 첼로(도무지 이 소리가 어캐 가능한지 모르겠다는게 매너놈만의 생각은 아니다), 여기에 팽팽히 각을 세우는 리흐테르의 묵직한 소리가 어우러져,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매너놈은 CD로 이 연주를 듣기에 앞서 "어둠의 통로"에서 구한 실황 동영상을 먼저 구해서 보았는데, 그렇게 당찬 첼로 소리야 로스트로포비치의 여러 음반에서 익히 들어 알고 있기에 그런갑다했다. 그런데 정말 경악한 건 리흐테르의 피아노 반주였다. 그저 첼로 여린음의 빈 공간을 메워주는데 머무르는게 아니라 첼로에 질세라 그악스럽게 짚어나가는 묵직한 소리에 경악했다.

오늘 실황의 피아노가 딱 그러했다. 비스펠베이의 원래 스타일이 그런 지 모르겠지만 가능한 한 비브라토를 거의 안 넣고 곧고 바른 소리를 내는데 주력했다면, 피아노는 그런 첼로소리를 받쳐주다가도 목소리를 낼 기회만 되면 이때다 싶다 할 동물적인 감각과 집중력으로 올곧은 소리를 터뜨렸다. 가장 기대가 컸던 1번, 3번을 들으면서 몇번이나 무릎을 치며 "바로 이거다!"를 외쳤는지 모르겠다. 분명 리흐테르의 묵직함에 소리의 축이 많이 쏠려 있었지만, 다닐 샤프란의 동곡 음반에서 보여준 긴즈부르크의 탄력 넘치는 소리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날 매너놈이 가장 집중해서 들었던 건 2번. 묵직하고 어두운 1악장과 경쾌하고 밝은 2악장의 대비가 다섯 곡 중 가장 두드러진 곡인데, 비스펠베이가 거의 비브라토 없이 곧은 소리로 일관하며 굵게 바탕을 그린 위에, 화려하게 멜리니코프가 내달렸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3번. 이제껏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로 익숙한 멜로디 흘러나오는데 그냥 입 헤 벌리고 들었다. 이정도 나오면 대책 없는거다. 마치고 대여섯번의 커튼콜동안 팔이야 아픈건 그쪽 사정이고, 박수 치고 환호성 지르는 수 밖에. 

돌아오는길, 매너놈이 꽤나 자랑질을 해 오던 P에게 문자로 염장을 날려줄까 하다가 참았다. 언제가 될 진 모르겠는데, 밥먹다 얘기 나올때 슬쩍 꺼내놓으면 되는 거다. 첼로 소나타 들으러 갔다가 피아노 소나타 듣고 왔다고. 그렇다고 "저음악기 사랑"을 주창하는 그녀가 그리 배아파할것 같진 않지만. 

월요일에는 골트베르크 변주곡의 현악3중주 공연이 있다. 첼리스트가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라 불안하긴 하지만 서울시향 악장과 비올라 수석이 있으니 최악의 경우엔 저음부 신경 꺼버림 되겠지.

 

 


Posted by manne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