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人2014. 6. 17. 14:14

어느새 코스웍 마지막 학기도 지나간다. 돌이켜보면 내 맘대로, 내 식대로의 공부를 가장 여유있게 했던 시기였다. 공부의 밀도가 점점 높아가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 하지만 그에 만만치 안헥 내가 정말 제대로 아는 게 없구나 자학이 커져 가는 건 부정적인 현상. 보기에 따라 이게 뒤집힐 수도 있겠지만 현재는 그렇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해야 하는 일 사이의 간극이 점점 커진다. 다다음주 학회에서 발표할 논문은 어쩌다보니 연구실에서 내 앞으로 떨어진 주제. 공부하다보니 왜 보스가 하필 내게 이걸 시켰는가 깨닫고 감사함과 동시에 무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된 일은 좋은 일. 연구실 동료 및 후배들이 저마다의 일로 나가떨어져서 사실상 교수님의 저술 작업을 C선배와 둘이 하고 있는 이 판은 확실하게 짜증나는 상황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불만없이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것은, 저술작업 와중의 부산물이 내게 아주 요긴한 도움이 된다는 점. 그러니까 별다른 불만 없이 꾸역꾸역 하는 거지.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어쩌다보니 연구실에서 발간되는 모든 논문을 필터치고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그와중에 숙제가 밀려있는 걸 동시에 발견하고는 이게 뭐하는 짓인지 멘붕이 살짝 오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확실하게 내가 무언가에 대해, 더 관심있는 것에 대해 더 알게 된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 남들에 비해 박사 코스웍 학점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정말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 어떤 논문을 자력으로 쓸 수 있는가니까. 물론 거기에 코스웍 성적도 좋으면 더 좋겠지만 그건 내게 허락된 게 아니지 싶고. 


조금 꼬이게 된 건, 연구실을 나가 어디로 갈 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 예정된 자리로 가는것도 나쁘지 않지만, 헤드가 귀국한 뒤 좀 더 공부하기 수월한 자리로 가게 된다면 내겐 더 좋은 거니까. 그리고 며칠 유예되는 것 만큼 내게 공부할 시간이 더 생기는 거니까 좋게 생각하면 나쁜 일은 아니다. 이번주에 각종 숙제와 발표논문 다듬는 일을 마무리지으면 되겠지. 


가면 갈수록 직관과 이론의 중요성을 깊게 깨닫는다. 방법론은 닥치면 어떻게든 다 해결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설명하고 싶고, 그 주장이 어디에 근거하느냐이다. 논증의 방법, 테크닉은 나중의 문제. 정말 중요한 것은 직관이다. 그런 직관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는 없다. 별 수 있나. 읽고 읽고 또 읽는 수 밖에 없다. 그게 전부다. 

Posted by manne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