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人2014. 7. 11. 10:39

지난 월요일이다. 생일이라고 연구실 동료들과 교수님이 생일상을 챙겨 주었다. 이년만에 훠궈를 먹고, 막걸리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임플란트 수술로 인해 술은 맥주 한 잔, 막걸리 한 잔이 치사량. 뒤늦게 합류한 보스 덕분에, 자연스럽게 공부 이야기가 나왔다. 의례적인 덕담이 오갔다. 박사논문 제안심사를 작년 가을에 성공적으로 마친 T는, 내년에 안식년을 맞은 보스와 함께 싱가포르로 포닥을 갈 에정이다. 프로포절을 마친 C는  약간의 부침이 있어 돌아오는 8월에 다시 한 번 박사논문 제안심사를 해야 한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1~2년 안에, 연구실을 떠날 사람들이다. 거기 도맷금쳐졌던건가, 갑자기 보스가 나까지도 연구실 나갈 것 처럼 이야기를 하더라. 가볍게 술잔을 입술에 가져갔다 떼고, 웃으며 말했다. 전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술이 조금 오른 보스가 말했다. 


넌 지금이라도 나갈 수 있다. 다만, 네가 어느 수준으로 나가길 원하느냐에 달렸지. 


나는 어느 수준에 올랐을 때, 강호에 나가기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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打字錄2014. 7. 10. 17:00

보스나 나나 완전히 뒤통수 맞은 일이 하나 있었다. 그덕에 팔자에도 없는 프로젝트에 빨려들어가 회의자료를 만드는 데 하루의 절반을 보낸다. 오랜만에 해 보는 기획실 직원 코스프레다. 산더미같은 자료를 파일과 문서로 쌓아두고 엑기스만 짜내 내부회의 초안을 만든다. 분량은 20매 정도. 정식 회의에 얹기 위해, 이걸 다시 3-4장으로 줄인다. font는 15에 줄간격 200%. 폰트가 너무 크지 않느냐는 후배들에 지적에, 최종보스는 "아우, 글꼴 커서 눈이 시원시원하다"로 답했다. 이번 회의자료의 최대 성공 요인은 15pt로 키운 폰트라며, 보스와 나는 낄낄댔다. 


조금 전 만든 최종회의자료를 들여다본다. 휴먼명조 15pt에 줄간격 200%, 부가설명으로 중고딕 13pt에 줄간격 160%. 요약은 회색 박스 안에 줄간격 130%으로 중고딕 13pt 다섯 줄. 오랜만에 각 잡고 만든 회의자료를 보니 3년 반 동안 박박 굴렀던 기획실 평가팀 생각이 났다. 걸레 빨아 행주 만드는 일이라 자조했던 시절의 깜냥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렇다고 기분이 마냥 좋은 것 만은 아니다. 너무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헛되게 보냈다는 자괴감이 다시 밀려든다. 


내게 옛 직장은 그런 곳이다. 원치 않은 skill을 여럿 익혔으나, 시간이란 가장 소중한 자원을 지나치게 낭비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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打字錄2014. 7. 8. 01:13

보스와, 그리고 동료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아니, 나는 치과 진료로 인해 맥주 한 잔 뿐이었다. 올빼미 버스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이 버스를 타고 간다면 집에는 두시 반에 도착할거고, 아침 미팅을 하려면 집에서 늦어도 여덟시 반에는 나와야 한다. 차라리 에어컨 나오는 학교에서 잠을 자는 게 낫지 않을까. 왕복 차비 3300원으로 아침을 먹는 게 낫지 않나. 그리고 공부 시간도 벌고. 내기를 걸었다. 앉아 갈 확률이 아리까리한 이 시간대, 버스에 자리가 넉넉하면 집으로, 아니면 박사과정 휴게실로. 버스는 자리가 넉넉했다. 버스에 올랐다. 앉은 자리가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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