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人2014. 6. 20. 13:52

후배 A가 올 봄에 학위를 받았다. 그는 취미삼아 직장인 연극동아리 활동을 한다. 지난 주 녀석이 연출한 공연을 옆지기와 함께 관람했다. 고생했다 인사를 건내다가, 졸업한 학부 선배들 소식이 궁금해 물어보았다. 국내에서 학위를 한 어느 선배는 세종시에 자리를 잡았고, 두드러지게 샤프했던 한 선배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제주도에 자리를 잡았다. 나와 터울이 얼마 나지 않는 그들이 좋은 자리를 잡아가는걸 보는 나는, 회사에서 보낸 시간과 지금 학교에서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한다. 


사람마다 각자의 흐름이 있다. 그러나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간에 비교를 피하기는 어렵다. 비교를 해 보면 '간극'이라는 말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과 내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간극이 있을까. 기본적으로 관심있는 영역이 다른 이상 절대적인 비교가 어렵겠지만, 해당 업계의 상대적인 위상을 통해 대략적인 비교를 할 수 있을 게다. 세세한 걸 따져볼 필요도 없다. 내가 한참 모자라지 뭐.


회사라는 아사리판에서 겪은 경험을 제로로 돌리려는 건 아니다. 학교 다니면서 보낸 2년은 재껴놓는다 하더라도, 어찌 되었든 5년을 풀로 구르면서 쌓은 암묵지가 절대 작지는 않다. 하지만 결국 뒤늦게 공부하다보니 아쉬운 건 아쉬운거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제주도에 자리잡은 선배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해 볼까 하다가 마음을 접었다. 괜찮은 학자가 된 다음에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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打字錄2014. 6. 19. 18:10

회사 다니던 시절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그렇게 지칭했다. "걸레 빨아 행주 만들기" 한 발자국만 뒤로 물러나서 바라보면 황당한 짓거리들을 진심으로, 또는 진짜 중요하다고 자기최면을 걸어마겨 사람들이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 결코 잊지 못할 사건이 하나 있다. 대리 초년차의 한 이사회였다. 정말정말 중요한 안건이라면서 조직개편안이 걸린 이사회가 열렸다. 잡소리 겉어치우면 이슈는 두 개였다. 단위부서 두 개의 업무분장을 좀 바꾸고, 부서 명칭을 "팀"을 "처"로 바꾸는 것이 하나였다. 또다른 문제는 진급적체로 인해 직원들 불만이 높으니, 그간 4급에 통용되던 "과장"호칭을 5급에게도 쓰게 해주자는 이야기였다. 이사회는 정말 신기한 장소였다. 정말 진지하게, 4급과 5급을 모두 과장이라고 부르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지를, 늙은이들은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었다. 그 아사리판 뒤에 나온 결론이 "4급을 선임과장이라 부르고 5급을 과장이라 부르자"였다. 


이런 짓을 겪고 나니, "공"자 붙은 데에서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 대강은 짐작이 간다. 이 연장에서 보면 세월호 사건 이후 단원고 지원 방안으로 외고 만들자는 이야기가 "어떻게"나올 수 있는지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다. 아무 의미없는 일에도 저렇게 심각한 토론이 벌어지는데, 별의 별 황당한 일이 다 벌어지는 아사리판에서, 떡고물 생길 것 같으면 무슨 일이든 안 일어날까.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다. 밑질 거 하나도 없다. 그러니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가"가 공허하게 들린다. 적어도 그바닥 조금 발 담궈 본 사람에게는. 


Posted by mannerist
打字錄2014. 6. 18. 15:06

distraction


내가 지금 다른 거 할 때가 아니란 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도무지 가만 놔 두는 사람이 없다. 공부 하나만 생각해도 머리가 터질 거 같은데 오만가지 역할 기대를 생각하면 진짜 미쳐버릴 거 같다. 제발 학교에 있는 시간 만큼이라도 신경 안 쓰게 모두가 나를 잊어줬으면 좋겠다. 

Posted by manne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