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piring pianist2008. 12. 9. 22:24
매너놈이 피아노 레슨을 다시 받기 시작한 게 올해 7월이다. 그때부터 어떻게 소문이 퍼진 거 절반, 같이 하자고 꼬신 거 절반 해서 매너놈이 끌어들인 공장 직원이 7명이다(모두 여성동지라나~). 이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피아노 동호회라도 공장 안에 만들어야 하는거 아니냐, 매너놈씨 이렇게 사람들 끌고 왔으니 회비 레슨비 한 달 면제받아야 되는거 아니냐 등등등 농담따먹기를 나누곤 한다.

그러던 와중 농담삼아 선생님께 농담을 던진 적이 있다.

"공장 사람들 많이 데려왔는데 저 레슨비 할인 안되나요?(멋적은듯 웃음)"
"(푸훗 웃으시면서)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에이, 밥을 사면 제가 사야죠."
"꼭 그런 게 아닌데. 이번에 성인반도 많이 늘어서 디지털피아노실 없애고, 진짜 피아노 더 들여올 거에요."
"아, 정말요?"
"네. 아마 담달 중에 그리 될 거 같네요."

지난 주 금요일은 매너놈네 공장 작업반에서 가장 큰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레슨 째고 어제 저녁 건너갔는데 와, 이빨 빠지고 건반 잘 안 올라오는 고물 피아노들이 모두 교체된 건 둘째치고, 새 피아노 열 대가 새로 들어온거다. 나무 니스 냄새도 아직 덜 빠진 새 피아노 열 대가 칸칸히 놓여있는 모습에 매너놈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론, 기존 연습실의 중고 피아노가 업라이트 최고 모델인 131cm짜리였음에 비해 121cm짜리라는건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새 피아노인데 가릴소냐. 어제 저녁 이 피아노 저 피아노 두들겨보며 어느 녀석이 좋은 소리를 내나 돌아다녔다. 처음엔 건반이 가장 묵직한 피아노를 잡고 길들이려 했지만 한 녀석이 건반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가장 덜 나고 다른 녀석들에 비해 워낙에 좋은 소리가 나서 그녀석을 길들이기로 했다. 그래봤자 지난주까지 매너놈이 쓰던 피아노보다는 훨씬 건반이 무겁긴 하다.

연말 공장업무 성수기가 시작되는 즈음이라 매너놈의 연습시간은 점심시간 한시간 이십분, 저녁시간 한시간 정도다. 점심은 두유나 김밥으로 때우고, 저녁은 김치볶음밥이나 제육덮밥을 다녀와서 일하며 삼십분동안 씹어먹거나 굶는다. 그걸론 양이 안 차, 오늘 퇴근하자마자 대강 저녁을 때우고 세시간동안 새 피아노를 길들이다 왔다. 아직 덜 길들여져서 낮은음자리 쪽의 건반을 짚으면 먹먹한 소리가 나고 터치도 뻑뻑하기 그지없다. 이게 정말 마약같은 재미가 있는 건, 계속 치면 칠수록 길들여지는 소리가 점점 저음쪽으로 내려가는게 느껴지는거다. 무언가에 홀린 듯, 체르니 30번 중반의 테크닉이 허용하는 거의 모든 곡을 총동원하여 피아노를 길들이다 왔다. 그렇게 세시간을 보내고 나니 손가락은 물론이고 팔꿈치 아래쪽 관절이 모두 먹먹하다. 주먹을 꽉 쥐는 게 힘들 정도다.

여러모로 아주 지랄같은 일 많던 2008년이었지만, 피아노를 제대로 시작했다는 것 한가지만으로도, 다른 모든 지랄같은일을 잊을 수 있지 싶다. 며칠 안 남은 올해, 할 데 까지 해 볼거다. 그리고 연말쯤 시간 잡아서 성인반 사람들하고 저녁이나 한 끼 먹으러 가야지. 꼼꼼한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도 해야 하고.





Posted by manne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