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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02 우파의 불안
打字錄2012. 9. 2. 00:47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둘 사이에서 진동한다. 현상을 보이는대로, 가장 명쾌하고 단순하게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전혀 상관없어보이는 배후의 작동논리를 하나하나 캐어가며 그 현상이 얼마나 복잡한지 보여줄 것인가. 나는 둘 중 하나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단지 전자의 단순명쾌함이 더 설득력있는 일이 있고, 후자의 섬세한 논리와 상상력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이 있을 뿐이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거칠게 분류하면 저 둘로 분류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나는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최대한 단순히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내 생각에 이 영화에서는 "배트맨 비긴즈"에서 보여 준 브루스 웨인의 섬세한 감정의 흐름과 성장담도, "다크나이트"에서 보여 준 골아픈 딜레마도 없다. 노골적이고 직관적이며 단순하다. 그리고 바로 그런 방식으로 우파의 공포를 펼쳐보인다. 그렇기에 "다크나이트"에 찬사를 보냈던 사람들의 실망과 불만은 그만큼 온당하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대해 쓴 글 몇 편을 둘러보았다. 많은 이들이 놀란의 전작에 비교하며 적잖은 실망감을 내보였다. 허술한 내러티브와 고약한 정치적 함의에 대한 불쾌함을 내비치는 글이 그런 류다. 그에 반해 이 영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3부작의 마무리로 "완벽하진 않지만 만족"스럽다고 말하며 이렇게 강변하곤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장대한"서사시의 마지막을 그려야 하겠냐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적극적인 옹호도 있다. 미디어스에 여섯 편의 연작평론이 그렇다. 이 글에서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디킨즈의 "두 도시 이야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스키마를 엮어간다. 이러한 다양하고 섬세한 논리로 베인의 혁명을 좌파들의 움직임과 겹쳐 보는 것은 오독이라 주장한다. 과연 그래야 할까. 내 생각에 이 영화는 그것보다 훨씬 단순하다. 불완전한 지금 세상에서, 그나마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우파들이 무엇을 공포스럽게 느끼고 있는가를 온전히 펼쳐낸다. 


에너지는 현대 문명의 근원이며 기술권력의 정점이다. 웨인 컴퍼니가 개발하고 있던 핵융합 원자로가 바로 그 상징이다. 온전하지 않고 불안하지만 그나마 이를 위험하지 않게 다룰 수 있는 건, 현 사회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쪽 뿐이다. 그나마. 그. 나. 마. 베인을 비롯한 "불만세력"들은 영화 시작부터 그러한 권력에 손을 뻗는다. 그들은 이를 관리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그저 현 사회에 '전반적으로' 불만을 가진 그들은 그저 현실을 부정할 뿐이다. 고담시를 권력자들에게 뺃어 되돌려주겠다고 하나,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독한 혼란, 혼돈,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기괴한 법정을 노골적으로, 세밀하게, 자세히, 몇 번이고 비춰보여준다. 고담의 처절한 고립 역시 이 맥락에서 봐야 한다. "불만세력"들이 말하는 세상을 엎어봤자 지구화된 이 세상에서 고립될 뿐이라고.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라 고립을 당할 뿐이라고. 미식축구장이 무너진 뒤 배트맨이 돌아오기 전에 온전히 펼쳐지는 암담한 고담시의 풍경은 바로, 현 사회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우파들이 "불만세력", 아니, 적나라하게 쓰자. 좌파들이 장악할 세상에 대한 공포다. 


결국 고담에는 평화가 돌아온다. 그러나 이를 되찾아오는 주체들의 맨 앞에는 자신의 부와 정의감을 남김없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발휘하는 배트맨/브루스 웨인이 있다. 그리고 그 뒤를 배트맨의 영웅적인 행동으로 인해 "길이 뚫린" 경찰, 불완전한 공권력이 뒤따른다. 브루스 웨인의 실패와 고난, 좌절, 그리고 너무도 쉽게 베인의 덪에 빠지는 공권력의 무능함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우파들이 그리 완벽하지 못함을, 아니, 적잖게 무능함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살만한 세상을 지키기에는 지금의 세력이 낫다고 말한다. "부를 세습한" 브루스 웨인의 호의와 덕성, 그로인한 노블리스 오블리제, 불완전하고 부분적으로 무능해도 "그나마" 선의를 지켜가는 공권력이 왜 나은지를 세 시간 가까운 스펙터클을 채우고 있다. 바로 이런 연장에서 정성일의 빛나는 통찰이 나온다. "2011년 뉴욕이 1789년 파리에 느끼는 창백한 두려움"


당신이 지금 세상에, 특히 지금의 우파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이 영화를 보고 불쾌함을 느낌이 마땅하다. 마이클 만 이상으로 도시의 내음과 그 매력을 온전히 담아내었다 해도, 사이버펑크에 가까운 배트맨과 그 장비들의 판타지가 이러한 도시의 현실성과 그 아무리 조화롭다 해도, 우파가 꿈꿀 수 있는, 개선의 정(살기 위해 범죄를 벌였다가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자기 힘으로' 발버둥치는)이 최대한 남아 있는 악녀 셀레나 카일이 제아무리 매력적이기 해도,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는 희망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서사의 고약함을 덮지 못한다. 남는 것은 아이맥스에 담아내는 스팩터클의 매력 뿐이다. 다만, 그것이 너무, 너무, 너무, 강할 "뿐이다". 


p. s. 나는 사실상 마지막 문장인 앞 끝자락에, 따옴표를 달았다. 용산 아이맥스의 가장자리에서 한 번, 출장다녀와 갑갑하던 팔월 중순의 어느 날 조조로 왕십리 아이맥스에서 한 번, 그렇게 두 번이나 보아 놓고서, 이러한 스팩터클을 "뿐이다"로 폄하하는 건 솔직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Posted by manne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