打字錄2008. 9. 3.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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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한 척 실실 웃으며 퇴근했지만 뭐. 속이 정상일 리가 있나. 연습실 가서 건반 짚어도 짚이는 게 아니더라. 멀쩡한 손가락 번호는 계속 꼬이고, 새로 진도 나갈 곡의 첫 소절만 머릿속에, 손목 안 근육에 꾸역꾸역 집어넣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손들고 집구석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켠다. 당연히 다음엔 공장 전산망 외부접속. 아직 공사 시작 안했는지 접속이 된다. 무덤덤하게 인사발령 공문을 클릭하긴 했지만, 평정을 유지하기 힘든 마음 속은 쓰리다.

공장에서 그나마 맘 터놓고 사는 몇명에게 간단히 문자로 알리니 한 사람은 전화를, 한 사람은 문자를 준다. 전화 온 사람과 떨리는 말 몇 마디 섞다가 간신히 전화를 끊고 문자 준 사람에게 전화해 한숨만 같이 푹푹 쉬다 끊었다.

덕택에 지금은 정종 한 잔에 김치 한 보시기 놓고, 아믈랭의 미친 피아노에 기대고 있다.
슈퍼 비르투오소, 연주기계, 극단적인 평가가 오가는 이 남자, 매너놈에게는 어떻냐고?

매너놈은 어떤 종류든, 테크니션, 극도의 테크니션에 대해서는 일단 열광하고 시작한다.
하나 테크닉, 둘 테크닉, 셋 테크닛... 테크닉 테크닉.



넋두리_히라노 게이치로의 '장송'에도 들라크루아와 쇼팽이 예술 = 테크닉을 설파하며, 한 단위의 테크닉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무엇과도 바꾸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릎을 치며, 나와 몇 살 차이 안나는 대가의 통찰력 - 아마도 이 역시 양적 노가다 증가에 따르는 테크닉이 극에 달해서 얻을 수 있었겠지 - 에 공감했던 적이 있다.

Posted by manne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