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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01 긴장이 풀린 건지 없는 건지.
打字錄2008. 11. 1. 22:17
오늘 새벽 한시부터 열다섯시간을 잤다. 내리 잔 건 아니다. 두 시 부터 열시까지, 그리고 다시 일어나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다시 세 시간을 잤고, 점심을 먹을까 하다 우유 한 잔 먹고 기어이 해가 진 다음에야 일어났다. 그러고 엄니가 해준 고등어조림을 씹어먹으면서 생각을 해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제야 정신이 좀 돌아와 생각을 해 보니 기가 막힌다. 지난 이주가 유난히도 강력한 긴장의 연속이긴 했다. 생전 처음으로 공장에서 사수가 떨어져나가 '독고다이'가 된 탓이 가장 크다. 명목상의 사수가 있긴 당신도 자기앞가림 하는 데 여념없는 차장님이 제대로 신경을 써 주길 기대하는게 과하다.

그런 판국에. 그대로 하는 일만 치는 게 성미에 안 맞는 탓이 절반, 이왕 엎어진 판국에 내맘대로 해 보자는 아집이 절반 합쳐저 부진부서 성과관리 프로그램 실사라는, 한 번도 해본적 없는 일을 짜내어 결재 마치고 다음주 출장 올려 제주도 비행기 표까지 끊어놓은게 그저께. 그것만 했나. 영문도 모를 국정감사에 투입되어 정상도 아닌 몸상태에 - 머리 빵꾸난 관계로 열흘동안 머리도 못감았지, 그판국에 몸살 들어 끙끙 앓았지 - 여의도 텔레토비 동산에서 뺑이치며 그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나으리'들의 작태를 지근거리에서 목격하고. 그나마 여진이 내 쪽에 닿을까 노심초사하다 경계경보 해제된 게 어제였다. 어제만 해도 간만에 맞는 여유있는 주말 어이 보낼까 싱긋거렸는데 왠걸, 막상 토요일 아침 눈을 뜨니 손하나 까딱 할 수 없을 정도로 넉다운되어버렸다. 열다섯 시간을 퍼질러 잔 지금도, 온 몸에 기운이 어딘가로 빠져나간듯 집중하기 힘들다.

피아노. 올해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 한 일 하나만 꼽으라면 공장 근처 복지회관에서 피아노 시작한 일일게다. 이나마도 지난주 '목적달성 - 결혼식 축하연주'후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이럴 때일수록 노가다 하농을 반복해서 풀어야 된다는거 알지만, 막상 피아노 앞에 앉을 시간을 쪼개기 힘드니 여의치 않았다. 일단 앞에 앉기만 하면 두세시간 보내는건 일도 아닌거 알면서도.

내일은 애인님의 임용고시 1차일. 어찌 되든간에, 다섯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전화로 깨워주고, 나도 그에 맞게 움직여야겠지. 점심 뭘 먹고싶어할까? 조금은 푸석할, 하지만 입가 깊게 번진 당신의 웃음이 그립다.

오늘은 밤을 새야겠다. 할 일이 떠올랐다.
Posted by manne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