打字錄2013. 9. 1. 02:25

늦은 오후, 옛 직장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이양반 참 묘한 양반이다.


흔히들 말한다. 능력에 비해 과소평가되는 사람. 샤프하고 빠릿빠릿하면서 꼼꼼한, 그래서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그런데 자기 공을 챙기지 않아 언제나 뒤로 밀리는 사람. 그 선배는 그런 사람이었다. 


교육파견 형식으로 직장을 1년간 떠나야 했던 석사 시절, 나보다 두 직급 위의 그 선배에게 내가 하던 업무를 인수인계했다. 모양새만 보면 웃기기 그지없다. 7급 사원 나부랭이가 4급 과장에게 인수인계하는 모양새가. 사실 정규직 정원만 천 명이 넘는 조직의 조직/개인평가를 7급 말단 혼자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였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모양새를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정치인 낙하산 인간쓰레기... 아, 이 개자식 이야기는 이 글 말미에 다시 나오게 된다. 무튼간에, 인수인계 과정을 본 선배들은 옆에서 이렇게 낄길댔다. "야, 7급이 4급 가르치네. 매너놈 부사수 빨리 둬서 좋겠다야. 그것도 과장님 부사수를..." 미친... 


시간은 흘러흘러 1년 뒤, 내가 일을 가르친(?) 그 선배의 부사수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미 마음이 회사를 떠난 지 오래였던지라, 일은 내 중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대놓고 참 많이 개겼다. 인간쓰레기 팀장이 헛소리하면 네 그러심니까... 그럼 저도 모릅니다... 내일 뵙죠 바이바이. 이런식으로 첫 회사생활의 마지막 1년을 보냈다. 그 덕에 그 선배만 죽어났다. 


그리고 엊그제 걸려온 전화. 외부경영평가 지적사항에 대해 새 판을 짜려고 하는 모양인데 뭔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선배 말을 들어보니 "업계"에서 자주 하지만 실제 회사에서는 잘 모르는 일이었다. 정확한 지적사항을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에프터서비스 개념으로 판 짜드리겠다고. 그리고 이메일로 옛 직장의 전년도 경영활동 평가결과를 받았다. 


죽죽 읽어나갔다. 내 밥줄이 아니다보니 이렇게 재밌는 글이 없더라. 더욱 재미있던 것. 인간쓰레기 팀장이 새 판을 짜려 했고, 일년 내내 안된다, 못한다, 악에 받쳐 싸우다가 개새끼 먹고 떨어져라 하고 팀장 뜻대로 해 준 일로 인해, 기관 전체 평가가 제대로 엿을 먹고 있었다. 조직/개인 평가에 대해 별다른 고민없이 불만만 통제하려고 잔머리 굴린 댓가라 4년째 조직을 수렁에 빠뜨리는 모양새를 보니, 안타깝기 전에 실현된 예언에 대한 쓸떼없는 자긍심(?)과 희열이 먼저 기어나왔다. "씨방새, 지맘대로 판 짜서 싸지른 똥에 쳐박혔으니 소원대로 됐구만."


나야 웃고 그만이다. 하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불쌍하고 엿같은 이유는, 얼마전 다시 평가팀장으로 그 인간쓰레기가 복귀해서 뻘짓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선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 개새끼가 싸지른 똥덩어리가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군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ㅠㅠㅠㅠ " / "어 거 어케 알았어. 오늘 그거 뜯어고치려다 또 보류했는데 공문까지 다 날렸는데 다시 생각한데~ 켁!" 역시 지버릇 개 줄까. 한 번 개새끼는 영원한 개새끼다. 어지간한 인간들에게는 다 인사하고 회사를 나왔지만, 그 작자는 면상 마주한 순간 내 자신을 통제할 자신이 없어 보지도 않았다. 그러길 잘 했다. 좌우간 난 답장을 보냈다. "좌우간 판 짜서 보내드리겠슴다~" 


공부하기 싫을 때 하는 짓이 있다. 예전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최근 소식과 인사를 둘러보거나, 검색엔진에서 옛 직장 소식을 검색해 본다. 여전히,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삽질을 계속 하는 걸 본다. 그러면 다시 앞으로 갈 동력을 얻는다. 


논문자격시험은 이번 주다. 주여, 제 스스로 글감옥에 갇힌 자에게 은총을. =)

Posted by manne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