打字錄2014. 6. 19. 18:10

회사 다니던 시절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그렇게 지칭했다. "걸레 빨아 행주 만들기" 한 발자국만 뒤로 물러나서 바라보면 황당한 짓거리들을 진심으로, 또는 진짜 중요하다고 자기최면을 걸어마겨 사람들이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 결코 잊지 못할 사건이 하나 있다. 대리 초년차의 한 이사회였다. 정말정말 중요한 안건이라면서 조직개편안이 걸린 이사회가 열렸다. 잡소리 겉어치우면 이슈는 두 개였다. 단위부서 두 개의 업무분장을 좀 바꾸고, 부서 명칭을 "팀"을 "처"로 바꾸는 것이 하나였다. 또다른 문제는 진급적체로 인해 직원들 불만이 높으니, 그간 4급에 통용되던 "과장"호칭을 5급에게도 쓰게 해주자는 이야기였다. 이사회는 정말 신기한 장소였다. 정말 진지하게, 4급과 5급을 모두 과장이라고 부르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지를, 늙은이들은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었다. 그 아사리판 뒤에 나온 결론이 "4급을 선임과장이라 부르고 5급을 과장이라 부르자"였다. 


이런 짓을 겪고 나니, "공"자 붙은 데에서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 대강은 짐작이 간다. 이 연장에서 보면 세월호 사건 이후 단원고 지원 방안으로 외고 만들자는 이야기가 "어떻게"나올 수 있는지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다. 아무 의미없는 일에도 저렇게 심각한 토론이 벌어지는데, 별의 별 황당한 일이 다 벌어지는 아사리판에서, 떡고물 생길 것 같으면 무슨 일이든 안 일어날까.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다. 밑질 거 하나도 없다. 그러니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가"가 공허하게 들린다. 적어도 그바닥 조금 발 담궈 본 사람에게는. 


Posted by manne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