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人2014. 12. 8. 23:49

술취한 보스가 전화를 했다. 너 아직 갈 길이 먼 거 알지? 많이 부족한 거 알지? 난 네가 일이 아니라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너 주위에 너를 익스플로이트, 그러니까 착취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게 가슴이 아프다. 니가 자식아 버텨내고 이겨내야해. 


주변에 최근 몰려 든 온갖 일거리가 생각났다. 내가 정말 잘 하고 필요해서 불러 나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스타일 맞춰 놓은 걸 다 깨먹고, 연구제안서의 목차도 못 맞추는 선배의 무능을 흉보고, 프린터 드라이버 하나 못 잡는 후배들을 한심해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착취당하면서 내 가장 소중한 자원인 공부할 시간을 잃게 되는 것, 그게 가장 큰 문제일 수 있다. 


그래서 술에 취한 보스의 말을 듣는 일은 힘들다. 아프지만 옳고, 그렇게나마 내게 그런 조언을 해 주는 보스에게 면목이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어려운 내 가깝고도 먼 미래를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manne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