打字錄2014. 12. 30. 23:27

지난 글에 이어서 바로 올해 결산을 쓰지 못했다. 하기 싫은 일 끝내고 하고 싶은 일, 정확히는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을 바로 이어서 하지 못할 만큼 나이가 들어버렸다. 나이로 퉁치는게 너무 서글프지 않게, 체력과 정신력이 방전되었다 정도로 고쳐 읽기로 한다. 좌우간, 올해 마지막 연구실 동지들 모임을 마치고, 보스에게 보내는 올해의 마지막 메일(아마도, 제발)을 쳐낸 다음에, 이제야 몇 자 적는다. 이것도 아내가 귀가하기 전까지의 이야기가 되겠지. 


죽자고 일했고, 이갈면서 공부했다. 가시적인 성과는 미미하다. 이정도로 요약되겠다. 


먼저. 보스의 책이 나왔다. 그리고 보스와 나의 책이 곧 나온다. 현재 2교 보는 중이고. 짧게 쓰면 이렇게 간단한 말이다. 저작권. authorship에 포함할 수는 없지만 시간과 집중력을 써야만 하는 일이 저술 작업에 꽤 크게 들어간다. 어떤 의미에서는 저작권에 포함되는 일 보다 더한 박람강기와 집중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시쳇말로 빛 안 나는 일이다. 모두가 배 째고 데드라인 넘길 때, 내 일 버려가면서, 그만큼 속 태워가면서 했다. 결국 그 와중에서 authorship을 얻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위한 공부를 할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고, 나도 배 째자면 충분히 배를 쨀 수 있는 일을 - 만약 그랬다면 보스의 성향상, 혀 한번 짧게 차고 당신이 했을 것이다 - 이런 씨발 내지는 내 인생에서 반나절 지우자, 하루 지우자, 삼일만 지우자, 하면서 꾸역꾸역 밀어나갔다. 그 와중에서 실수한 거에 대해 상상 이상의 욕을 먹기도 했고 혼나기도 했다. 그 기분, 알기 어려울거다. 내가 절실하게 원해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최선을 다 해서 한 일이, 내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잘못되어, 안 먹어도 되는 욕을 먹게 되는 그 상황. 올해처럼 그런 상황에 많이 놓였던 적은 없었다. 나몰라라 하는 연구실 동료들에 대한 불만을 속으로 꾹꾹 눌렀던 적도 없다. "선배는 능력 있으시니까..." 이 말처럼 날 짜증스럽게 하는 말도 없었다. 버티는 게 능력이라고도 하지만, 난 별로 즐거운 적이 없었다. 후회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속태워가면서 보냈던 이 시간들이, 나중에 어딘가 내게 도움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가장 잘한 일은. Goldberger의 A course to the econometrics를 완독한 것. 그리고 모자란 점 많지만 스터디를 만들어 여름방학 내내 굴렸던 것. 전보다는 이런저런 방법론이 많이 편해졌다. 어디까지나 저 책이 "개론서"에 지나지 않은 만큼, 실증연구자의 길을 택한 업보로 죽자고 앞으로 더 파야 할 거다. 적어도, 무슨 방법론을 접하든 "쫄"일은 거의 없어진 듯 하다. 


가장 뿌듯한 일은. 3년간의 갈굼을 버티고 버텨서, R사용을 보스에게 인정받은것. SAS나 제대로 하라는 핀잔을 받으며 시작한 나름의 독립운동이었다. 보스의 책 나온 후 보름동안 SAS코드를 R로 모두 바꿔서 보내드린 일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가장 큰 고비는, 옆방의 P가 읽던 JPPAM의 방법론 시뮬레이션 논문 재현이었고. 


마눌이 와서 오늘은 이만. 

Posted by manne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