打字錄2012. 12. 17. 13:12

학교에 와서 선후배들과 대선 관련 이야기를 하다 든 잡상 몇 자. 


올해 유심히 본 드라마 중 하나는 "추적자"이다. 결코 대통령이 되지 말아야 하는 강동석(김상중)을 떨어뜨리기 위해, 백홍석(손현주)은 모든 걸 던진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그는 "아빠"로서의 목표를 이룬다. 김상중 낙선. 그리고 이정길의 얼굴을 한 야당 대표가 당선된다. 재밌는 점. 그 야당 대표는 어떠한 사람인지, 드라마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전혀. 단지 당선결과 발표를 알리는 텔레비전 수상기 화면에 이정길의 얼굴만 지나갈 뿐이다. 그가 어떤 자격을 지녔는지, 어떤 사람인지, 드라마는 묻지 않는다.


물론 그런 과감한 생략과 함께 주된 줄거리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기에, 드라마의 극적 긴장은 끝까지 유지될 수 있었다. 디테일을 다루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과감한 생략이라는 점을 작가도, 감독도 잘 알고 있었다. 칭찬해 줄 만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현실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웃기 어렵다. 


왜 한 사람을 떨어뜨려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는 너무도 많다. 반성없고 몰상식하며 비윤리적이다. 그는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 SNS를 위시한 온라인 세계는 온통 그를 떨어뜨리기 위한 격문으로 가득 찬다. 특히 토론이 있는 날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왜 그의 반대자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딱 부러지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윤여준의 지지 연설 정도였을까. 즉자적 차원의 윤리와 인격에 대한 긍정적 표현 이외에, 나는 그를 지지해야 할 실증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나는 지금 드라마에서 칭찬했던 광경의 실제 상황을 보고 있다. 과감한 생략으로 주된 스토리 라인의 몰입력을 높이는 방식을 칭찬하는 건 가상의 세계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그가 왜 대통령 자리에 올라야 하는지,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 "이쪽 세상"의 사람들이 이상하고 또 무섭다. 누구 말마따나, 이상스러운 그 열광 뒤에 가리워진 절망을 볼 수도, 인정할 수도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왕 글을 쓰기 시작한 거, 다 솔직히 말하자. 드라마가 아닌 실제 세상이기에 내가 느낌 감정은 공포에 가깝다. 바닥에 떨어진 지지도가 추동력을 받고 올라간 원인은, 모두 캠프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왔다. 만약 그가 당선된다면 이는 왜 그를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캠프보다는, 바깥의 동력에 의해서이다. 그렇다면 그 공도 바깥에 돌려야 하고, 그에 따른 권리와 정치적 책임 역시 바깥에 물어야 옳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가. 결코 아니다. 후보 당선의 원인이 캠프 바깥에 있음에도, 당선에 따른 권리와 책임은 원칙적으로 캠프 내부에 임한다. 까놓고 말해 붙어놓고 쌩까면 끝나는 거 아닌가. 그때 와서 속았다 가슴을 칠 것인가. 지금 이런 지리멸렬함을 보여주는 그들이 국정을 과연 잘 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어떤 때보다도 사나운 야당으로 돌변할 그들 앞에서. 


꿈도 희망도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본능적 혐오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는 쪽에 도장 찍고, 하루 온 종일 읽고 쓰다 맥주 한 캔 하고 그대로 잠들 것이다. 


아, 정말 하고 싶은 말. 작가가 의도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강동석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대의 하나로 똘똘 뭉친 "깨어 있는 시민"들의 묻지마 지지로 인해, 드라마 전체에 얼굴 한 번 내밀어 본 적 없는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촌극을 정의사회 구현과 희망의 승리로 비장하게 그려 낸 연출력에는 경탄을 금치 못하며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Posted by manne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