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piring pianist2008. 9. 5. 12:54

점심시간을 쪼개서 피아노 레슨을 받는 매너놈은 월/수/금에는 레슨을 받고, 화/목에는 걍 연습을 한다. 그리고 야근과 저녁 약속이 없다면 "아무 생각없이(이게 제일 중요하다. 생각이 많아지면 몸을 못 굴리다)"연습실로 가서 두어 시간 정도 연습하다 집에 간다. 그리고, 땡기면 집구석 디지털 피아노 앞에 앉는다.

지난주 휴가 관계로 연습을 꽤 건너뛰어, 월요일 레슨때 '지난번 지적한 것 중 고쳐진게 별로 없다'는 단순명쾌한 갈굼을 받은 이후 적당히 의욕이 넘쳐 소나티네 9번"만"이틀 내내 두들겼다. 낙소스 뮤직 라이브러리에 접속해서 연주도 들어보고. 물론 그 스피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알레그로 모데라토 정도의 빠르기까지는 첫 소절이 따라잡았다. 문제는, 공장 일과 관련해 정신이 산란하여 더 진도 나갈 마음이 안 났던거. 그냥 첫 소절만 주구줄창 이틀동안 두들겼다.

그러고 나서 오늘 레슨. 치고 나서 "음. 잘 하셨네요."소리 듣는게 얼마만인지. 물론 세세한 부분, 아직까지 왼손 여린음 처리가 안되는거, 성의없이 툭툭 던지는 것 처럼 건반 짚지 말라는 지적은 여전하지만, 어디 그게 하루아침에 고쳐지나. 몸이 안따라간다고오~ 그나마 '왼손' 찍어서 이야기해주신 데 감사해야하나. 오른손은 좀 나아졌단 말이 되니까.

문제는 그 다음, 예상치않게 지적사항이 하나도 없자. 당연하다는 듯 다음장을 넘기신다. 켁. 연습량 거기는 제로에 가깝단 말이죠. 내 낭패어린 표정을 보던 선생님, 피식 웃으시면서 잠깐의 잡담 모드. 낙소스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들었던 곡에서 일부 스타카토 처리가 분산화음으로 변경되어있는거, 툭툭 던지듯 건반 짚는다는 나쁜 자세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반대로 선생님의 손 모양도 보고. 거의 손목을 들지 않고 손끝으로만 소리를 낸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다.

공장 돌아오는길에 시계를 확인해보니, 레슨 받은 시간이 10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허투루 가르친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더 배우고 뽑아낼 수 있는데, 진도 나갈 수 있는 부분까지 내가 연습해오지 않아 더 배울 수 있는 부분을 못 배웠던 것 뿐이다. 하루 최소 연습량을 정해놓고 무조건 그걸 채우고 자는 걸 시도해볼까? 좋다. 일단 평일 세시간, 주말 다섯시간부터 시작해보기로 한다. 크로노그래프가 필요하지 싶은데 그건 뭐. 줄 끊어진 전자시계로 처리하면 되겠지.

손목의 통증이 끝났나 싶더니 한시간 이상 건반을 짚으면 이제 서서히 손가락 마디가 저려온다. 이 통증도 가시고 나면, 또 한 단계 올라가겠지. 그냥 통증에 무심해지기로 한 결심, 여적지 유효하다.

Posted by mannerist
aspiring pianist2008. 9. 3. 23:57
지난달부터 꽤나 신경이 쓰이는 일이 생겼다. 왼손 손목, 그러니까 새끼손가락과 약지를 움직이는, 손목 아래쪽에 자리잡힌 근육이 이상스러울 정도로 땡기기 시작하더니 증세가 극단으로 치달은 8월 말에는 왼손 손목을 뒤로 재끼기만 하면 진짜 손목이 끊어질것같은 통증이 느껴져 60도 이상 뒤로 재끼질 못했다. 무리하게 하농과 K265의 한 옥타브짜리 화음을 두들겨 댄 탓인가 싶어 연습을 끊어 보기도, 파스를 붙여 보기도 했건만 별반 나이지지 않았다. 선생님이 자세는 좋은 편이라고 했는데, 손목과 팔을 움직이는게 좀 덜 해서, 결국 자세가 나빠진건가. 계속 이래서 진도 나가겠나. 그런데 이걸 얘기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다 물어본 게 지난주 휴가 가기 전, "절대 복종"을 모토로 삼고 있는 제자 매너놈은 레슨 시간에 "저기 여쭤볼 게 있는데요"함서 말을 꺼낸다.

"그런데요, 여기 - 왼쪽 손목 아래를 가리키며 - 가 계속 아파서 그러는데요..."
"(빙긋 웃으며, 그러나 무덤덤하게)네. 그거 원래 그래요."
"네?"
"당연한거에요."
"(망설이다)오른손은 또 안그러거든요. 혹시 제가 자세가 나빠서 그런건가 해서요."
"음. 그렇진 않아요. 오른손은 괜찮으시다면서요."
"네. 그러니까 이상해서요."
"지금 왼손, 특히 손목하고 팔이 오른손만큼 안돌아가서 그래요. 손목이랑 팔 전체를 좀 더 쓰시고요."
"네..."

그리고. 그날 대화의 포인트.

"안아플때까지 연습하셔야해요."

운동선수처럼 운동으로 뭉친 근육은 운동으로 풀란 말인가... OTL...

그날 이후 왼쪽 손목이 땡기건 아프건 그건 니네 사정이라 생각하고 연습량을 평소의 두 배 정도로 늘렸다. 하농 스케일 연습을 한두시간씩 하고 난 다음에야 연습곡과 K265를 쳐 나갔다. 아픈것도, 강도가 계속 똑같다보니 덤덤해졌다. 왜 중학교때 하루에도 수십대씩 타작당하다보면 엎드려뻗쳐하고 야구빠따로 서너 대 맞는 것 정도는 가을바람에 이는 낙엽이 뒤통수 치는 것 정도로 심드렁해지는 일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십오년 전, 만성이 되다 보니 엎드려뻗친 상태에서 별 생각없이 선생의 구두코를 바라보며 "저 XX 오늘 구두는 닦고 왔네" 그러고 피식피식 웃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통증에 무덤덤해졌다는 말이다.

그러고 오늘, 어김없이 점심시간에, 그리고 퇴근후에 하농과 소나티네를 연습하다가 무심코 기지개를 켜는데, 왼쪽 손목의 통증이 싹 가셨다. 이게 뭔 일인가 싶어 손목을 과도하게 뒤로 재껴보고 꺾어 보는데 가뿐하다. 혹시나싶어 등 뒤로 손바닥을 마주쳐 봤는데도 두세 달 전처럼 가뿐하게 접힌다. 뭐야. 이거. 다 나았잖아.

조금 더 생각해보니, 통증을 의식하게 되지 않은 시기가 K265를 한번에 이어서 주욱 칠 수 있게 된 시기랑 대강 일치한다. 그런거랑 맞물려 생각하니, 겨우 통증 하나가 없어졌을 뿐인데 뭔가 한 걸음 더 나간 거 같다.

앞으로 팔 이곳 저곳이 더 쑤실 거다. 오른손 2,3 번과 4, 5번 소리는 여전히 확연하게 구분될 정도로 다르고, 5번은 심심할때마다 두번째 마다기 꺾이지 않아 부담스러운 자세로 불안정한 소리를 낸다. 왼손은 모데라토 이상의 템포에서 16분음표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럴때마다 또 극심한 통증에 한번씩 시달리겠지.

엄살 떨지 말고 요령 떨지 말자. 노가다는, 양적 축적은 위대하다. 그냥 무심히 밀고나가는게 최고다. 매너놈이 무슨 레온 플라이셔도 아니고, 직장에 반나절을 매여 사는 주제에 무리한 연습으로 오른팔 마비를 겪을 공산은 신경 꺼도 될게다. 그러니 고통이고 아픔이고 핑계대지말고 연습, 연습, 연습이다.


Posted by mannerist
打字錄2008. 9. 3.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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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한 척 실실 웃으며 퇴근했지만 뭐. 속이 정상일 리가 있나. 연습실 가서 건반 짚어도 짚이는 게 아니더라. 멀쩡한 손가락 번호는 계속 꼬이고, 새로 진도 나갈 곡의 첫 소절만 머릿속에, 손목 안 근육에 꾸역꾸역 집어넣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손들고 집구석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켠다. 당연히 다음엔 공장 전산망 외부접속. 아직 공사 시작 안했는지 접속이 된다. 무덤덤하게 인사발령 공문을 클릭하긴 했지만, 평정을 유지하기 힘든 마음 속은 쓰리다.

공장에서 그나마 맘 터놓고 사는 몇명에게 간단히 문자로 알리니 한 사람은 전화를, 한 사람은 문자를 준다. 전화 온 사람과 떨리는 말 몇 마디 섞다가 간신히 전화를 끊고 문자 준 사람에게 전화해 한숨만 같이 푹푹 쉬다 끊었다.

덕택에 지금은 정종 한 잔에 김치 한 보시기 놓고, 아믈랭의 미친 피아노에 기대고 있다.
슈퍼 비르투오소, 연주기계, 극단적인 평가가 오가는 이 남자, 매너놈에게는 어떻냐고?

매너놈은 어떤 종류든, 테크니션, 극도의 테크니션에 대해서는 일단 열광하고 시작한다.
하나 테크닉, 둘 테크닉, 셋 테크닛... 테크닉 테크닉.



넋두리_히라노 게이치로의 '장송'에도 들라크루아와 쇼팽이 예술 = 테크닉을 설파하며, 한 단위의 테크닉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무엇과도 바꾸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릎을 치며, 나와 몇 살 차이 안나는 대가의 통찰력 - 아마도 이 역시 양적 노가다 증가에 따르는 테크닉이 극에 달해서 얻을 수 있었겠지 - 에 공감했던 적이 있다.

Posted by mannerist